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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통

우연히 들린 매장에서예쁜 쓰레기통을 구매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와맘에 쏙 드는 색감에 바라보고만 있어도 입 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오염이라도 될까비닐을 씌웠다. 이물질이 묻어 냄새라도 풍길까 쓰레기 하나 버리기도조심스러웠다. 바쁜 일상 속에늘 그 자리에 있어 그렇게 익숙해졌나 보다.그렇게 무뎌졌나 보다. 어느덧 가득 찬 쓰레기통 냄새가 올라오고벌레가 꼬여가도 다음에... 피곤함과 귀찮음에치우기를 또 미룬다. 그렇게 방치됐다.그렇게 썩어갔다. 쓰레기를 치워도비닐을 바꾸어도물에 씻어도 처음 그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한 곳에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나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봐 주길 기다리던 쓰레기통은 내 흔적들을 품에 안은채그렇게 함께 썩어갔다.

2025.05.09

# 그림자

화창한 아침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 하나 내가 그리 좋은지 우스꽝스런 모습도 마다 않고 나를 따라한다. 내가 가는 곳 내가 있는 곳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따라다닌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숨어버린 햇살에 그림자는 기지개를 쭈욱 뻗는다. 좀더 같이 있으면 안될까? 헤어지기 그리도 싫은지 내 발을 붙잡으며 길게 늘어진다. 어두어진 저녁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더이상 그림자가 보이지 않음에 쓸쓸한 마음이 커져간다. 골목 어귀를 돌았을때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에 그림자는 다시 모습을 내보인다. 벌써 나를 잊은건 아니겠지? 보고싶어 돌아왔어. 사라진 줄 알았던 그림자 반가움과 안도감에 웃으며 말을 건넨다. 너 거기 있었구나?

2025.05.08

# 주인 잃은 배

갈곳을 잃었다. 망망대해로 호기롭게 출항 하던 그 위상은 바람에 찢겨진 돛과 이미 지쳐버린 선원들로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 고인 물을 퍼내려는자 찢어진 돛을 부여잡고 우는자 그리고 키를 잡은 선장 수 많은 항해속에서 그는 이미 느겼으리라 이 배는 더이상 가망이 없음을 점점 가라앉는 배를 보며 시린 한숨을 내 뱉었을때 실날같은 희망도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죽는 법은 없다며 바다로 뛰어든 선장 선원들은 점점 멀어져 가는 선장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 이번 항해는 수백번의 항해 경험이 있는 나를 믿고... - 선장이 항해전 했던 말이었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 더이상 버텨줄 이가 없다. 그를 믿고 배에 몸을 실은 선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렇게... 그렇게... 바..

2025.05.07

# 식어가는 국 그릇

발밑에 뜨거운 불을 두고 그 고통을 참아가며 너무 과하면 넘쳐 버릴까 너무 버티면 사라져 버릴까 적당히, 그러나 완벽하게 그 모순적인 상황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하며 수천번을 속으로 외치고 자신을 다그친 끝에 결국 그렇게 끓어 올랐으리라. 발밑에 불은 꺼지고 오색찬란한 식탁위에서 더이상은 뜨겁지 않고 화려함과 편안함에 익숙해져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이제야 한껏 풀어진다. 점점 식어가는 자신은 끝끝내 알아채지 못한채.

2025.04.28

# 내 입을 찢어도...

- 내 입을 찢어도 원하는 대답은 못들으실 겁니다. - 누군가와 약속을 했다. '이 얘기는 어디가서 하면 안돼! 알았지?' 알았다고 했다. 걱정말라고 했다. 그리고 보았다. 안도하는 그 사람의 눈빛을.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 XX가 너한테 뭐라고 얘기했냐?' 이런 얘기 했지? 저런얘기 했지? 하면서 나를 추궁했다. 아는바 없고 들은바 없다고했다. '너까지 위험해 진다?' 끝에 돌아온건 협박이었다. 하지만 그 협박은 나에게 더 큰 다짐으로 돌아왔다.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사람이 고맙다했다. 나는 말했다. 약속했었다. 걱정하지 말라했었다. 그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웃으며 얘기했다. - 내입을 찢어도 원하는 대답은 못 들었을 겁니다. -

2025.04.28

# 피로회복제

달짝지근한 맛에 끌려몰래 먹었던 피로회복제 어렸을적 그맛이왜그리도 좋았던지 어른들이 알아채면혼이날걸 알면서도 몰래 먹는 그 맛은 또왜그리도 좋았던지 기대감과 설레임에몰래 몰래 한병 두병겁도 없이 마셔댔다. 시간에 쫓겨업무에 치여생활에 묶여 세상에 지쳐가는어른이 되었을때 불안한 마음으로다시 뚜껑을 연다. 어렸을적 그 맛은어렸을적 그 설렘은 이제는 익숙해져전혀 새롭지 않을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간절한 마음에 이번엔 마지막이기를 기도하며 다시 뚜겅을 연다.

2025.04.25

# 버려진 영수증

길가에 버려진찢겨진 영수증 하나.이제는 나의 것이라는증명임에도 불구하고덩그러니 버려진 영수증 하나.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그 사람이 즐거워했던 곳그 사람이 있었던 곳모든 걸 몸에 세겨넣으며,하나하나 기록했으리라.초라한 모습이 화려함에 비교되어말조차 건네지 못한 채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렇게 찢겨져 갔으리라아프단 소리조차나도 데려가 달라는 하소연 조차 하지 못하고이곳에 홀로 남아할 수 있는 것이라곤잠시나마 그의 것이었던 그 순간을 추억하는 것뿐서서히 지워져 가는잉크를 아쉬워하며점점 번져가는기억에 목 놓아 우는버려진 영수증 하나.

2025.04.25

# 교통체증

꽉막힌 출근길 도로에 가득찬 차들에 숨이막혀 물 한잔과 함께 숨을 내뱉는다. 8시 15분 지각일까? 애타는 마음과 달리 멈춰버린 페달과 함께 차는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움직이는 차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그렇게 그들과 함께 앞으로 전진한다. 다시 멈춰버린 차 답답함에 연 창문으로 향긋한 풀냄새와 바람냄새에 살며시 눈을 감는다. 지저귀는 새소리 성난 경적소리 그리고 따뜻한 햇살 지각 이라는 것이 교통체증이라는 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2025.04.24

# 김치

김치는 익어야 제맛이지 오래될수록 그 맛이 깊어진다. 처음에 밋밋했던 그 맛이 오랜시간 숙성을 거쳐 누구에게도 꺼내지지 않으면 그때야 비로소 묵은지가 된다. 그런데 나중에 꺼내자 지금은 꺼낼 때가 아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리석은 마음에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되면 그때부터 김치는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슬슬 골무지가 피고 악취가 진동한다. 더이상은 먹지 못하는 묵은지에서 썩은 김치로 그렇게 변해간다. - 미안해 -그때 못한 내말처럼 다신꺼내지 못할 썩어버린 내 울음처럼.

202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