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시 18

# 쓰레기통

우연히 들린 매장에서예쁜 쓰레기통을 구매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와맘에 쏙 드는 색감에 바라보고만 있어도 입 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오염이라도 될까비닐을 씌웠다. 이물질이 묻어 냄새라도 풍길까 쓰레기 하나 버리기도조심스러웠다. 바쁜 일상 속에늘 그 자리에 있어 그렇게 익숙해졌나 보다.그렇게 무뎌졌나 보다. 어느덧 가득 찬 쓰레기통 냄새가 올라오고벌레가 꼬여가도 다음에... 피곤함과 귀찮음에치우기를 또 미룬다. 그렇게 방치됐다.그렇게 썩어갔다. 쓰레기를 치워도비닐을 바꾸어도물에 씻어도 처음 그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한 곳에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나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봐 주길 기다리던 쓰레기통은 내 흔적들을 품에 안은채그렇게 함께 썩어갔다.

2025.05.09

# 그림자

화창한 아침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 하나 내가 그리 좋은지 우스꽝스런 모습도 마다 않고 나를 따라한다. 내가 가는 곳 내가 있는 곳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따라다닌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숨어버린 햇살에 그림자는 기지개를 쭈욱 뻗는다. 좀더 같이 있으면 안될까? 헤어지기 그리도 싫은지 내 발을 붙잡으며 길게 늘어진다. 어두어진 저녁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더이상 그림자가 보이지 않음에 쓸쓸한 마음이 커져간다. 골목 어귀를 돌았을때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에 그림자는 다시 모습을 내보인다. 벌써 나를 잊은건 아니겠지? 보고싶어 돌아왔어. 사라진 줄 알았던 그림자 반가움과 안도감에 웃으며 말을 건넨다. 너 거기 있었구나?

2025.05.08

# 식어가는 국 그릇

발밑에 뜨거운 불을 두고 그 고통을 참아가며 너무 과하면 넘쳐 버릴까 너무 버티면 사라져 버릴까 적당히, 그러나 완벽하게 그 모순적인 상황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하며 수천번을 속으로 외치고 자신을 다그친 끝에 결국 그렇게 끓어 올랐으리라. 발밑에 불은 꺼지고 오색찬란한 식탁위에서 더이상은 뜨겁지 않고 화려함과 편안함에 익숙해져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이제야 한껏 풀어진다. 점점 식어가는 자신은 끝끝내 알아채지 못한채.

2025.04.28

# 피로회복제

달짝지근한 맛에 끌려몰래 먹었던 피로회복제 어렸을적 그맛이왜그리도 좋았던지 어른들이 알아채면혼이날걸 알면서도 몰래 먹는 그 맛은 또왜그리도 좋았던지 기대감과 설레임에몰래 몰래 한병 두병겁도 없이 마셔댔다. 시간에 쫓겨업무에 치여생활에 묶여 세상에 지쳐가는어른이 되었을때 불안한 마음으로다시 뚜껑을 연다. 어렸을적 그 맛은어렸을적 그 설렘은 이제는 익숙해져전혀 새롭지 않을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간절한 마음에 이번엔 마지막이기를 기도하며 다시 뚜겅을 연다.

2025.04.25

# 버려진 영수증

길가에 버려진찢겨진 영수증 하나.이제는 나의 것이라는증명임에도 불구하고덩그러니 버려진 영수증 하나.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그 사람이 즐거워했던 곳그 사람이 있었던 곳모든 걸 몸에 세겨넣으며,하나하나 기록했으리라.초라한 모습이 화려함에 비교되어말조차 건네지 못한 채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렇게 찢겨져 갔으리라아프단 소리조차나도 데려가 달라는 하소연 조차 하지 못하고이곳에 홀로 남아할 수 있는 것이라곤잠시나마 그의 것이었던 그 순간을 추억하는 것뿐서서히 지워져 가는잉크를 아쉬워하며점점 번져가는기억에 목 놓아 우는버려진 영수증 하나.

2025.04.25

# 교통체증

꽉막힌 출근길 도로에 가득찬 차들에 숨이막혀 물 한잔과 함께 숨을 내뱉는다. 8시 15분 지각일까? 애타는 마음과 달리 멈춰버린 페달과 함께 차는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움직이는 차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그렇게 그들과 함께 앞으로 전진한다. 다시 멈춰버린 차 답답함에 연 창문으로 향긋한 풀냄새와 바람냄새에 살며시 눈을 감는다. 지저귀는 새소리 성난 경적소리 그리고 따뜻한 햇살 지각 이라는 것이 교통체증이라는 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2025.04.24

# 김치

김치는 익어야 제맛이지 오래될수록 그 맛이 깊어진다. 처음에 밋밋했던 그 맛이 오랜시간 숙성을 거쳐 누구에게도 꺼내지지 않으면 그때야 비로소 묵은지가 된다. 그런데 나중에 꺼내자 지금은 꺼낼 때가 아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리석은 마음에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되면 그때부터 김치는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슬슬 골무지가 피고 악취가 진동한다. 더이상은 먹지 못하는 묵은지에서 썩은 김치로 그렇게 변해간다. - 미안해 -그때 못한 내말처럼 다신꺼내지 못할 썩어버린 내 울음처럼.

2025.04.23

# 비밀번호

- 비밀 번호 네자리를 입력해 주세요 - 잊혀지지 않아 쉽게 바꿀 수 없는 네자리 비밀번호 바꿔보려 해봐도 오랜시간 함께해온 기억 때문일까 결국 다시 돌아오는 나만의 네자리 비밀번호 오래전 부터 함께한 네자리 번호에는 너를 만났던 기억 너와 웃었던 추억 너와 울었던 슬픔 그리고 아픔 이 모든게 담겨있어 쉽게 바꾸지 못하는가 보다. 더이상 누를 수 없는, 수천번을 눌렀던 네자리 끝 번호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지워 지지 않는 네가 남겨놓은 네 자리 네자리 비밀번호

2025.04.22

# 왜 혼자야?

귀찮게도 두사람은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 기분이 좋지 않아 다리가 아프다고 잠시 앉아 쉬면서도 무슨 할말이 그리 많은지 뭐가 그리 웃기고 슬픈지 한참을 그렇게 떠들어댔다. 언젠 부터 인가 혼자 조용히 쉴시간이 많아졌다. - 또 귀찮아 지겠군 -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 모습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구름한점 없음에도 비가 내려 내몸을 적셨다. 떨어지는 빗물을 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오늘은 혼자야?

2025.04.21

# 벗어던진 장갑

따스하게 감싸주는 장갑에 손가락은 자유를 잃었다. 답답함과 불편함에 벗어전진 한쪽 장갑 자유를 얻었음에 홀가분한 마음도 잠시 칼 같은 바람이 손 가락을 어루만질때 어우 추워... 잠깐의 추위임에도 손이 얼어 다시 끼우려 해봐도 잘 되지 않는다. 더욱 얼어가는 한쪽 손 나머지 한쪽을 벗어 자유로워진 손으로 겨우 다시 끼워진 한쪽 장갑 다시 얼어가는 한쪽 손 바보같은 행동은 그렇게 반복된다. 잠깐의 불편함에 익숙함이 당연한 줄 알았던 그의 고마움을 몰랐던 벌로

2025.04.21